짱호치 2020. 3. 10. 14:42

<완벽한 타인>

완벽한 타인(2018)

 

코로나로 인해 회사에서도 재택 근무를 하고, 약속도 거의 사라지고(원래 별로 없음) 집에 있을 시간이 많아지니 자연스레 놀 것들이 부족해진다. 강제 북유럽 인간의 삶을 살면서 할 것이라곤 역시 넷플릭스, 웨이브, 티빙을 돌려가며 새로운 것을 탐색하는 것. 집에서 영화를 볼 때는 심각한 것보다 가벼운 영화 위주로 보는데 이번에는 티빙에서 <완벽한 타인>을 봤다.

영화 개봉 이후에 꽤 반응이 좋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실제로 관람객 평점도 꽤 높았다. 정확한 내용은 잘 모르고 '휴대폰에 울리는 모든 것들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하는 게임'을 기반으로 한 영화라는 정도만 알고 봤는데 꽤 유명한 영화의 리메이크 작품이었다.

전체적인 내용은 5명의 소꿉 친구들이 30년 이상의 세월이 흐른 뒤 집들이 자리에 모여 식사를 하며 일어나는 일들을 그린 영화다. 사실 영화의 스토리 자체는 흥미로웠지만 그 안에서 각자의 캐릭터성은 그렇게 새롭지 않았던 것 같다. 이렇겠군, 저렇겠군 예상한 것들이 그대로 들어맞았으니.

(아마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이서진 배우가 맡았던 준모 역할이 가장 별로였다. 초반에 어린 시절 모습이 거의 스포인 수준인데다 유추할 수 있도록 보여준 것도 있겠지만. 영배라는 캐릭터도 그냥 처음부터 왠지 그럴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맞아서 스스로 놀라기도 했다. 그래도 워낙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마치 실존 인물이 된 양 연기를 하니 몰입감도 있고 흥미진진했다.

후반부는 조금 늘어졌지만 결말이 '사실 그들은 게임을 하지 않았다'라는 것이어서 더 마음에 들었다. 물론 그 모든 것들을 모른 채로 살아야하는 세경이나 수현은 안타깝지만 세상엔 알고자 해도 결국은 알 수 없는 비밀이 너무나도 많지 않은가. 내가 항상 나사가 숨기고 있는 것들에 대해 의문을 품고, 일루미나티나 프리메이슨의 존재에 대해 항상 의문을 품듯이 말이다. 그리고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이 마냥 이득은 아니듯이.

이 글을 쓰면서 내게 지금 오는 카톡들을 지인들에게 세세하게 공유해야 한다는 상상을 해봤다. 사실 친구들에게 딱히 숨기는 것은 없지만 그래도 뭔가 각 지인 집단별로 공개하는 선이 있지 않은가. 내가 아무리 크게 뇌의 필터링을 거치지 않고 말을 하는 사람이라지만, 그렇게 친하지 않은 지인들 앞에서 내가 받은 카톡이나 내가 쓴 트윗들을 읽는다고 생각하면 그냥 다시 태어나고 말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나 역시 주변 사람들에게 별로 보여주고 싶지 않은 2개의 삶을 더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적인 나, 개인적인 나, 그리고 비밀의 나. 누구에게나 보여지고 싶지 않은 '비밀의 나'가 있을 것이다. 그 선을 넘고자 하지 않는 것이 서로에게 완벽한 타인이 될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아. 죽으면 꼭 사이버 장례를 치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