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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져스: 엔드게임

짱호치 2019. 5. 14. 12:27

<어벤져스: 엔드게임(Avengers:Endgame)>

 

Avengers : Endgame(2019)

 

※이 글에는 어벤져스 시리즈에 대한 스포가 다량 포함되어 있으니 알아서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나의 10대는 해리포터였고, 나의 20대는 어벤져스였다>

 

어벤져스 개봉 이후 많은 리뷰와 후기들이 쏟아졌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공감을 했던 문장이 바로 이 문장이었다. 20대의 끝자락에 있는 지금, 나의 10대는 해리포터였고 나의 20대는 어벤져스였다. 해리포터라는 큰 시리즈의 마지막 장이 끝날 때 내 기분이 그러했듯, 어벤져스를 보내는 지금 그 누구보다 헛헛함이 크다.

처음 아이언맨을 보던 날이 생각이 난다. 그 전까지는 아이언맨이 누구인지, 어떤 영화인지, 마블이 뭔지 아무것도 모르던 내가 '이 배우가 이번에 한국에 왔대' 해서 친구따라 아이언맨을 본 것이었다. 이후 그냥 주는대로 받아먹던 내가 <어벤져스>가 개봉하면서 본격적인 덕후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여러명의 히어로가 모여, 뉴욕을 아니 세계를 구한다. 특히, 지구를 씹어먹는 천재인 아이언맨과 우주를 씹어먹는 얼굴 천재 토르가 나의 덕심을 자극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나는 MCU 광팬이 되어버렸고 나를 이렇게 만들었던 어벤져스도 막을 내렸다.

모든 영화가 그렇듯 모든 사람들에게 100% 마음에 드는 영화는 없다. 솔직히 말하면, 나에게 엔드게임 역시 100% 완벽하진 않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캐릭터의 마지막 결말을 만나야했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말을 차치하고, 내게 이 영화가 100%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는 내가 아이언맨과 토르의 팬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이 한 마디로 아마 모든 것이 이해되겠지. 

누군가는 과몰입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나는 덕후인걸요... 사랑하는 아이언맨의 죽음과 사랑하는 토르의 역변. 처음 영화를 봤을 땐 마지막까지 토르가 그렇게 몸에 치즈소스가 흐르는 상태로 나올 지 몰랐고, 마지막 토니의 죽음은 더욱 예상치 못했다. 친구와 개봉일 첫 아이맥스를 보러 들어가면서 '토니 죽으면 어떡해?' 하는 친구에게 '농담으로라도 그런 소리 하지마 진짜 가만안둬' 했었는데 말이다. 몇 번의 회전문을 돌면서 나는 이제야 겨우 이 결말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해했다기보다는 그저 받아들이고 있다.

개인적인 받아들임 여부와 관계없이, 스토리와 캐릭터만을 고려해보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히어로로서 평생을 대의를 위해 살아온 캡틴은 개인의 삶을 살아보는 결말이, 평생을 개인을 위해 살아온 토니는 히어로로서의 대의를 위한 결말이 대비되기도 하고 아름다웠기 때문에. 그래서 어쩌면 가장 토니다운 결말이라고도 생각했다. 1970년 토니의 탄생을 앞둔 하워드가 '개인을 위해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의를 위해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고, 본인이 히어로의 길로 끌어들인 피터를 비롯해 앞으로 미래를 살아갈 모건을 위해서라면 토니는 그런 선택을 할 수도 있다고.

하지만, 이 죽음의 맥락을 이해하는 것보다 받아들이기 힘든 것은 어쩔 수 없다. 보고 또 보고, 해석해보고 이해하고, 그렇게 6번을 봤지만 여전히 몇 개의 장면에서는 대성통곡을 할 수 밖에 없다. 그 중에서도 MCU라는 세계관 내에서 다시 토니 스타크의 아이언맨을 볼 수 없다는 것과 그렇게 평생을 두려워하고 걱정만 했던 토니가 마지막까지 그 짐들을 떠안을 수 밖에 없었던 점은 계속해서 날 슬프게 만드니까.

가끔 토니에게는 페퍼와 모건이 함께하는 5년이라는 행복한 시간이 있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부분에는 동의할 수 없다. 물론, 페퍼와 모건에게 5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우주만큼 3천만큼 사랑받았겠지만, 토니라면 어느 한 켠에는 잃어버린 자들에 대한 죄책감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했을 사람이니까. (실제로 그런 장면이 나오기도 했고) 이 모든 사태를 예견했던 본인이 제대로 준비를 하지 못해서 이런 일이 생겼다고 생각했었을테니까.

결론적으로, 토니는 스스로 희생을 통해 지키고 싶었던 사람들을 지켰고, 잃을 게 없던 본인을 잃어가면서까지 다른 사람들에게 가족과 친구를 돌려주었다. 어쩌면 가장 이상적인, 가장 히어로다운 결말이었다. 아이언맨 트릴로지와 토니 스타크가 나왔던 수많은 영화들을 다시 보는 것이 나에게 조금 힘든 일이 되었다는 것이 안타깝지만. 그래도 토니 영원히 3천만큼 사랑해!

토니 이야기에서 토르 이야기로 넘어가자면, 극 중 토르 캐릭터에 대해서는 하루종일 말해도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캡틴이 묠니르를 쥐게 되는 것도, 토르가 술에 지독히 의존하며 알콜중독자가 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그 누구보다 아꼈던 동생을 잃었고(심지어 로키가 오딘손이라고 하는 부분은 아직도 내 눈물 버튼), 절친 헤임달을 잃었으며, 그토록 지키고 싶어했던 아스가르드 그 자체인 국민도 절반을 잃었다. 거기에, 핑거스냅 직전 타노스의 목을 내려치지 못해서 이런 사태가 생겨났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싶기도 했겠지.

사실 토르의 멘탈 붕괴는 영화 초반부터 드러난다. 지구로 돌아온 토니가 '쟨 왜저래?' 하는 장면에서 넋을 잃은 토르는 스스로를 실패했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캐롤이 타노스를 죽이기 위해 떠나려고 할 때에도 토르는 술을 마시고 있었다. 결국 타노스의 정원(타노스의 리틀 포레스트)에서 토르는 스스로를 컨트롤하지 못하고 타노스의 목을 댕강 잘라버리기도 했다. 타노스에 대한 분노와 스스로에 대한 패배감,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이 모두 몰아친다면 그 누구라도 버텨내지 못했겠지.

그렇기에 토르가 뉴아스가르드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알콜중독, 게임중독으로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해할 수 있다. 살도 조금 찔 수 있다! 그래도 천둥 타고 변신할 때는 살도 쫙 빠지고 너와 내가 아는 그 모습으로 돌아올 줄 알았지... 끝까지 이럴 줄은 몰랐지... 다이어트가 이렇게 힘듭니다. 하지만 이제 살찐 토르도 귀여워 보이기만 하는 나, 노답인가요? yes.

토르가 결국 하지 않아도 될 과거여행을 한 것은 오로지 복수만을 위해서였다. 극 중 2013년 아스가르드로 가보자면 멘탈이 흔들려 혼란해하고 있는 토르에게 로켓은 '너만 잃은 줄 알아? 나도 다 잃었어.' 라고 이야기한다. 단언컨대, 이 부분은 로켓 나빴다. 이 작전이 성공해서 가루가 되었던 사람들이 돌아오면 로켓은 가족(가디언즈 오브 더 갤럭시)들을 다시 찾는 거겠지만 로키와 헤임달은 돌아오지 않는다고!

게다가, <토르: 라그나로크>에서 토르가 얼마나 멋있었는지 우리 다 알잖아요! 묠니르 없어도 스스로 천둥과 번개를 제어할 수 있는 신이라는 거, 아니 오히려 묠니르 없을 때 더 짱 쎈거 우리 다 알잖아요! 망치의 신, 도끼의 신 아니라 천둥의 신인거 우리 다 알잖아!스톰브레이커 없어도 짱 쎄고 짱 잘 싸우는 토르인데, 손 하나로 다 뿌셔뿌셔하고 다니는 모습 보고싶었는데 그런 장면이 없어서 좀 아쉬웠다. 토르 너프 그만해...

<가디언즈 오브 더 갤럭시3>도 남았고, 본체의 재계약 이야기가 솔솔 흘러나오고 있는 만큼 내가 사랑하는 토르 다시 돌려주세요. 라그나로크와 인피니티워에서 그 멋있었던 토르로 돌려주세요. 지금도 물론 귀엽고 멋지고 다 하지만 제가 사랑하는 해적과 천사가 낳은 아들, 코타티 금속 섬유와 같은 근육을 가진 토르로 돌려주세요. BRING ME THOR AGAIN! 

이제 내가 사랑하는 두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는 마무리하고, 몇몇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해야겠다. 먼저, 캡틴은 2012년 뉴욕에서 캡틴과 캡틴의 싸움은 정말 액션적으로도 완벽했고, 'I can do this all day' 'I know, I know' 장면에서는 너무 귀엽기까지 해서 참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보는 럼로우도 반가웠고, 헤일 하이드라 재밌는건 말할 것도 없고.

그 전에, 캡틴과 나타샤의 대화 중에 '어떤 사람들은 과거를 잊고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 되는데 우리는 안되는 것 같아' 라고 한다. 캡틴은 그래서 다시 과거로 돌아갈 선택을 한 것이겠지. 그래서 자신의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바튼과 그 가족들, 그리고 다른 어벤져들의 미래를 위해 나타샤는 스스로 희생을 선택한 것이겠지. 그래도 솔로무비 나올건데 나타샤 돌려주라.

그리고,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던 한 글이 있다. "엔드게임을 최단 시간으로 보는 법". 그 글에서는 앤트맨 루트로 보면 '니가 모르는 것을 스캇도 모르니까 괜찮아!' 라고 적혀져 있다. 그리고 그 글을 보고 4차를 봤었는데, 자꾸만 스캇에게 이입이 되어서 너무 웃겼다. 아무것도 모르는 스캇을 로켓이 멍뭉이 취급하는 것도 너무 귀여웠고, '우리 멍멍이 우주 여행 가고싶어요~? 데려다 줄까요~?'. 하지만 MCU 내 내 귀염둥이 중 하나인 피넛(a.k.a. 캐시)이 이렇게 훌쩍 커버린 것은 조금 속상하네요. 피넛 쪼꼬미로 돌려줘.

사람들이 돌아오고 나서 다같이 싸우는 전투 장면은 당연히 명장면이기도 하지만, 일단 몇가지 손에 꼽고 싶은 장면들이 있다. 우리 소중한 피터가 타이탄에서 거미줄 타면서 들어오는 장면은 말할 것도 없이 좋고, 어벤져스 어셈블도 좋고(아직도 이 부분에서는 소름이 쫙 돋는다), 작고 소듕한 피터를 여자 캐릭터들이 둘러싸면서 지키는 장면도 좋아한다.

하지만, 내가 최고로 꼽는 장면은 토니와 페퍼가 등을 맞대고 싸우는 장면과 쫑알쫑알 말하는 피터를 그냥 껴앉는 토니 부분이다.  만들어줘도 안입는다는 그 수트를 입고 나타난 페퍼와 피터가 살아서 돌아온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그저 안심하는 장면. 토니가 그토록 지키려 했던 사람들. 아니, 나 지금 또 글 쓰다가 울겠다.

위에서 언급한 몇 개의 장면들을 추리기도 힘들었는데 자꾸 이 장면도 좋았고, 저 장면도 좋았고 하는 생각이 계속 든다. 무차별 사격에서 그루트를 보호하려는 로켓, 캐롤 하나 막기 위해 폭격기가 일제히 하늘로 향하는 장면, 인피니티워에서 스톰 브레이커를 가슴에 꽂았던 토르가 이번에는 똑같이 반대로 겪고 있는 장면(흐앙 안돼), 스파이더맨의 즉살 모드 발동 등 다대다 전투는 화려하고, 웅장하고 볼 것들이 많아서 좋았다.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제기하는 '남들보다 4배 정도는 노화 속도가 느린 캡틴은 어떻게 늙게 되었는가?'와 '결국 타임스톤을 잃게 되는 것은 똑같은데 닥터스트레인지는 왜 애진즉에 스톤을 뿌셔뿌셔 하지 않았는가?' 에 대한 의문은 아직까지 풀리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서사를 가진 엄청난 히어로들이 출연하는 이 시리즈를 완벽하게 만들기는 누구라도 어려웠을 것이기에 받아들이고 만족하고 있다.

앞으로의 MCU가 어떻게 흘러갈지, 당장 엔드게임 직후의 이야기이자 아이언맨이 없는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은 어떻게 나올지, 가모라가 없고 토르가 있는 <가디언즈 오브 더 갤럭시 3>와 나타샤가 없는 <블랙위도우 솔로 무비>가 어떻게 될 지 너무나 궁금하지만 그저 나오기만 해주시면 알아서 잘 보겠습니다.

처음 글을 쓰면서 허전함이 크다고 했다. 몇 번을 봐도 허전함은 채워지지 않을 것이다. 다음 MCU 시리즈가 나오고, 또 다른 팀업 무비가 나와도 이렇게까지 사랑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이 어벤져스 시리즈에 너무 많은 시간과 사랑을 쏟아서 다음번에는 이만큼 할 수 없을 것 같다. 마치 지금의 내가 해리포터만큼 신비한 동물 시리즈를 사랑하지 못하는 것처럼. (물론 줄어들었다지만 남들보다 과도하게 사랑하긴 함)

그리고 언젠가는 아이언맨도 캡틴 아메리카도 리부트가 되겠지. 하지만 내게 아이언맨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연기하는 토니 스타크고, 내 캡틴 아메리카는 크리스 에반스가 연기하는 스티브 로저스니까. 엔드게임을 보고 나니 그렇게 사랑하지 않았던 캐릭터들도 하나하나 다 소중하고, 시빌워 때 왜 그렇게 팀캡 팬들과 목청 터져라 싸웠는지(ㅋㅋㅋ)도 후회되고.

어찌되었든, 엔드게임으로 어벤져스 시리즈가 끝났고, 블랙위도우를 제외한 원년 멤버들의 이야기도 여기서 끝났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매번 그 다음을 기대하게 하는 영화가 되어줘서 고맙고, 영화라면 그냥 주는대로 받아먹던 내가 끊임없이 해석하고, 몇 번을 다시 보고, 숨은 부분들을 찾도록 만들어줘서 고맙다. 

 

그리고, 나의 20대를 채워줘서 고마워. Avengers, I love you 3000!